1. 지각(Perception)
지각이란 인간의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자극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감각자극을 접하게 됩니다. 이러한 감각자극을 인간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할까? '인간이 자신이 사는 세계로부터 들어오는 다양한 현상을 어떻게 지각하는가?'는 전통적으로 철학에서 관심을 가져온 주제입니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에 따르면, 외부 세계로부터 유입되는 다양한 현상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대륙의 합리주의 철학자인 Kant는 인간에게는 경험하지 않고서도 세상을 지각할 수 있는 선험적이며 생득적 능력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의 인지과정에서 지각의 중요성은 현대철학의 흐름의 하나인 현상학에 이르러 더욱 강조됩니다. 이들에 따르면, 지각이란 개인이 자신의 경험을 해석하고 그 경험으로부터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입니다. 즉 인간은 자기에게 경험되고 지각되는 대로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외부의 자극을 어떻게 지각하느냐에 따라 인간행동이 달라진다고 보아 지각을 인간 행동의 근거로 보고 있습니다. 이처럼 지각은 현대철학에서 그 의미가 점차 강조되고 있습니다.
1) 영아기 지각능력
지각발달은 생에 초기인 영아기에 상당한 수준의 발달이 이루어집니다. 영아의 지각능력에 대해서는 많은 철학자와 심리학자가 관심을 두었지만, 자신의 지각경험을 영아가 언어로 표현할 수 없으며, 언어적 기술 이외에 영아의 지각경험을 알아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1960년대까지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Fantz, Fagan 등을 위시한 여러 연구자가 언어반응이 아닌 다른 여러 행동반응으로 영아의 지각경험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함으로써 지각발달에 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영아의 지각능력이 과거에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당히 발달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영아기 지각능력은 무엇보다 시각체계의 발달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신생아의 시각체계는 충분히 발달되지 않아 세상을 정확하게 볼 수 없다고 보았으나, 최근의 많은 연구결과 신생아의 시각체계가 태어나면서부터 상당한 기능을 가지고 태어나 성인만큼 완벽하지는 않지만, 과거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상당히 발달되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영아기 청각·지각능력은 시각·지각능력에 비해 훨씬 더 발달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궁 안에 있는 태아도 강한 소리를 들으면 더 많이 움직이고 심장박동도 빨라진다고 합니다. 출생 후 신생아는 소리의 강도, 지속시간, 방향, 고저 등을 잘 변별합니다. 흔히, 큰소리보다 부드러운 소리를 좋아하며 큰소리는 피하고 부드러운 소리 쪽으로 향하고자 합니다. 특히 여자 목소리가 들리면 울음을 잠시 멈추거나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리기도 합니다. 아기가 사람 소리에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양육자와 아기 간의 애착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양육자가 내는 소리에 아기가 반응하는 것을 보고 대부분의 양육자는 더욱 아기에게 애정을 가지게 되고 더 많은 자극을 제공하게 되어 점차 서로 간의 애정이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DeCasper와 Fifer(1980)의 연구에 따르면 생후 3일 된 신생아도 엄마 목소리를 다른 목소리로부터 변별할 수 있고 더욱 선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아는 음악소리를 언제부터 지각할 수 있을까? 한 연구에 따르면, 생후 1일이 된 신생아도 여러 종류의 음악소리를 좋아하고 영아가 젖꼭지를 빨 때 음악소리를 조절하면 음악을 듣기 위해 빨기를 조절하고, 빠르게 빨 때 음악이 나오고 느리게 빨면 소음이 나오도록 하였을 때, 음악이 들리고 소음이 안 들리도록 빠는 속도를 조절하였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음악소리를 지각하는 능력이 거의 타고난 능력임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어떤 음악을 더 선호하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영아에 있어 지각능력은 각 감각 양상 내에서 뿐 아니라 서로 다른 감각 양상 간의 관계를 지각하는 능력도 일찍부터 발달됩니다. 생후 4개월 된 영아는 시각과 청각 간의 관계를 지각할 수 있어 사람의 입모양과 말소리의 관계도 지각할 수 있습니다. 생후 한 달 된 영아는 시각과 촉각 간의 관계를 지각할 수 있어 자신이 입에 물었던 젖꼭지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도 이해합니다. 그리고 시각과 신체감각 간의 관계를 지각할 수 있어 타인이 표정을 보고 자신의 근육을 움직여 같은 표정을 짓는 모방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영아기 지각능력은 과거에 생각하였던 것보다 일찍부터 발달되며 연령이 증가할수록 더 정교해지고 좀 더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지각하기 위해 책략을 사용하거나 지식을 사용하는 능력이 계속 발달하게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2) 유아기 지각능력
Piaget에 따르면 유아들은 세상을 지각함에 있어 자신과 외부 세계를 분리하지 못하고 자신을 외부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와 함께 유아들은 시·공간적 조망능력을 갖지 못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Piaget는 이를 자아중심적 사고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또한 유아기는 논리적 사고보다는 눈에 보이는 지각적 특성에 의해 사고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어 Piaget가 생각한 논리적 사고, 즉 조작은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유아기 지각적 사고의 특성입니다. 대표적으로 Piaget의 '액체량 보존 실험'에서 유아는 시각적으로 지각되는 사물의 특성에 근거하여 판단하는 오류를 범함으로써 액체량의 보존에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Piaget는 이 시기를 논리적 사고 이전 단계라 하여 전조작기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논리적 사고를 지각적 사고에 비해 높은 수준의 능력으로 보았던 Piageet의 관점과는 달리, 현대철학에서는 지각을 통한 세상 이해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현상학적 관점입니다. 이들에 따르면, 인간의 다양한 신체감각이나 '몸'을 통해 지각되는 세상에 대해 이해가 논리적 사고보다 낮은 수준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는 논리적 사고를 지각적 사고보다 우위에 두는 이성중심의 근대적 가치관에 대한 비판으로, 유아기 지각적 사고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함을 시사합니다. 특히 유아기는 논리적 사고가 아니라 지각을 통한 세상 이해가 주로 이루어지는 시기로 몸을 통한 지각경험은 사고를 이끌고 인지발달에도 기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유아가 지각하는 세계는 논리로 대변되는 과학적 지식의 세계와 대립되는 반과학적 세계가 아니라 또 다른 의미를 지닌 보완적 세계인 것입니다. 만약 유아가 몸을 통해 지각되는 세계를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라 하여 무시하고, 그들에게 과학적 지식만을 가르쳐야 한다면, 과학으로 설명될 수 없는 수많은 현상을 유아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관점에서 유아기는 지각을 통한 세상 이해가 주로 이루어지는 시기로, 논리적 사고능력에만 국한되지 않고 상상력이나 창의적 능력을 길러주는 데 유아기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유아기 교육은 이론적, 개념적 지식전달의 교육에서 벗어나 몸을 통해 느끼고 지각하는 삶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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