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표상(Representation)
표상이란 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사진 찍듯이 그대로 묘사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으로부터 지각되는 특성을 중심으로 머릿속에 저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세상에 대한 정보는 여러 가지 정신적 부호를 통해 우리의 마음속에 저장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고양이를 보고 고양이에 대한 심상을 마음속에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고양이라는 단어를 읽고 고양이라는 단어에 대한 의미를 마음속에 표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표상은 대상이나 상황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들을 나타내는 특징적인 무언가를 중심으로 지각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표상능력이란 객관적 사실이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나 상황으로부터 지각되는 것을 주체가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표상은 인간 주체의 능동적 이해, 즉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에 근거한 주관적 해석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것을 강조한 현상학적 관점에서의 세상에 대한 이해와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표상이란 보통 감각적으로 외적 대상을 의식상에 나타내는 심상을 말합니다. 이 점에서 사고에 의한 논리적, 추상적인 개념과 구별됩니다.
표상은 물리적 표상과 정신적 표상으로 나누어집니다. 물리적 표상이란 마음 밖에서 물리적 매개물을 통해 대상을 나타내 주는 표상을 말하며, 보통 그림 같은 표상과 언어 같은 표상으로 구별됩니다. 그림 같은 표상은 사진, 그림, 지도, 도형 등을 포함하며 유사성이 있고 연속적이고, 상을 가지며 대상과 동질적 특성을 지닙니다. 반면, 언어 같은 표상은 인간의 언어뿐 아니라 수학, 상징논리, 컴퓨터 언어와 같은 형식시스템을 포함하며 유사성이 없고 비연속적이거나 디지털식으로 표현되고, 임의적이고 명제적인 특성을 지닙니다. 정신적 표상이란 어떤 대상이나 사태가 마음속에 저장되는 것을 말하며, 이후 행동에 영향을 줍니다. 정신적 표상은 주로 시각적 심상을 통한 유추표상과 언어나 형식논리를 사용하는 분석표상으로 구별됩니다. 발달적 관점에서 보면 분석표상이 유추표상보다 추상적인 특성을 지니기 때문에 분석표상을 유추표상보다 늦게 사용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유추표상과 분석표상 각각에서도 추상성의 정도가 다른 표상이 존재하기 때문에 간단히 이분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혹은 표상을 추상성의 정도에 따라 구별하기도 하는데, Perner(1991)는 일차표상, 이차표상, 상위표상 등 3가지 수준의 표상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일차표상이란 현재 존재하는 대상이나 일어나고 있는 실제 상황에 대한 표상을 지칭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준의 표상으로, 생후 1년 내내 형성됩니다. 그러나 일차표상은 대상과 유사한 패턴만을 인식하므로 잘못된 지각적 표상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표상을 해석하는 것은 이차표상입니다. 이차표상은 일차표상이 현실 상황을 직접 표상해 주는 것에 비해 현실과 다른 상황을 표상해 줍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과거나 미래,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을 표상합니다. 일반적으로 이차표상을 일차표상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아동이 바나나를 들고 전화하는 가장놀이(pretended play) 상황에서, 유아는 현실을 일차적으로 표상한 후, 즉 '전화기'에 대한 일차표상이 이루어진 후, '전화기'라는 대상을 현실 분리하여 '바나나'라는 대상에 적용하는 이차표상이 일어납니다. 상위표상이란 표상에 대한 표상입니다. 즉 다른 사람이 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표상하고 있고, 그 사람이 표상하고 있는 것을 내가 표상할 수 있을 때 상위표상을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Leonardo da Vinci의 '모나리자'는 어떤 여인에 대한 표상입니다. 우리가 갖는 모나리자 그림에 대한 표상은 결국 어떤 여인에 대한 표상을 지닌 모나리자 그림에 대한 표상, 즉 '표상에 대한 표상'인 셈입니다. 발달적 관점에서 제기되는 중요한 논쟁 중 하나는 '언제부터 정신적 표상 능력이 가능한가?'입니다. 과연 인생 초기인 영아기에도 표상능력을 가지는가? 만약 영아들이 표상능력을 가진다면, 그것은 성인의 표상능력과는 어떤 다른 특성을 지니는가? 인간의 표상능력에 대한 '경험론적 관점'과 '생득적 관점'간의 철학적 쟁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Locke를 중심으로 한 경험론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인간은 태어날 때 백지상태로 태어나므로 영아는 아무런 표상능력도 지니지 않았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둘째, Kant를 중심으로 한 생득적 관점에서는 영아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풍부한 개념적 표상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인간의 표상능력과 같은 인지능력은 경험을 통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선험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생득적 능력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piaget는 인간의 초기 인지시스템은 개념적 성질이 결여된 순수한 감각운동기적 특성을 지니지만 성장하면서 환경과의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보다 발달된 형태의 인지시스템을 구성하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은 적응을 위해 아주 단순한 생득적 반사능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이러한 능력은 아주 제한적이며, 점차 후천적 경험을 통해 복잡해진다고 보았습니다. 즉 영아기의 표상능력은 개념적 요소를 포함하지 않는 감각운동기적인 특성을 지니며, 점차 환경 속에서 적극적 경험을 통해 개념적 표상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Piaget 관점에서도 환경과의 경험은 발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환경과의 경험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능동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적극적 경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경험주의자들에게 있어서처럼 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사진 찍듯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단순한 묘사로의 경험이 아니라, 경험에 대한 능동적 의미부여과정을 통해 정신적으로 표상함으로써 높은 수준의 인지능력을 갖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영아기의 표상능력은 개념적 요소를 포함하지 않는 감각운동기적 성격을 지니며 점차 환경과의 상호작용과정에서 능동적 의미부여과정을 통해 개념적 표상을 구성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Piaget의 관점은 생득적 관점과 경험론적 관점을 모두 받아들인 상호작용론적 관점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