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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표상능력의 발달
발달적 관점에서 제기되는 중요한 논쟁 중 하나는 '언제부터 정신적 표상 능력이 가능한가?'입니다. 과연 인생 초기인 영아기에도 표상능력을 가지는가? 만약 영아들이 표상능력을 가진다면, 그것은 성인의 표상능력과는 어떤 다른 특성을 지니는가? 인간의 표상능력에 대한 '경험론적 관점'과 '생득적 관점' 간의 철학적 쟁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Locke를 중심으로 한 경험론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인간은 태어날 때 백지상태로 태어나므로 영아는 아무런 표상능력도 지니지 않았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둘째, Kant를 중심으로 한 생득점 관점에서는 영아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풍부한 개념적 표상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즉 인간의 표상능력과 같은 인지능력은 경험을 통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선험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생득적 능력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Piaget는 인간의 초기 인지시스템은 개념적 성질이 결여된 순수한 감각운동기적 특성을 지니지만 성장하면서 환경과의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보다 발달된 형태의 인지시스템을 구성하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은 적응을 위해 아주 단순한 생득적 반사능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이러한 능력은 아주 제한적이며, 점차 후천적 경험을 통해 복잡해진다고 보았습니다. 즉 영아기의 표상능력은 개념적 요소를 포함하지 않는 감각운동기적인 특성을 지니며, 점차 환경 속에서 적극적 경험을 통해 개념적 표상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Piaget 관점에서도 환경과의 경험은 발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환경과의 경험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능동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적극적 경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경험주의자들에게 있어서처럼 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사진 찍듯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단순한 묘사로의 경험이 아니라, 경험에 대한 능동적 의미부여과정을 통해 정신적으로 표상함으로써 높은 수준의 인지능력을 갖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영아기의 표상능력은 개념적 요소를 포함하지 않는 감각운동기적 성격을 지니며 점차 환경과의 상호작용과정에서 능동적 의미부여과정을 통해 개념적 표상을 구성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피아제 관점은 생득적 관점과 경험론적 관점을 모두 받아들인 상호작용론적 관점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2. 영아기 표상능력의 발달
피아제는 영아기 대표적인 인지능력인 '대상의 영속성' 개념을 표상능력의 출발점으로 보았습니다. 영아가 대상의 영속성 개념을 획득하였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피아제는 영아가 숨겨진 물체에 손을 뻗어서 덮개를 벗기는 것과 같은 적극적인 운동행동을 보이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피아제가 관찰한 영아는 물체가 보이지 않으면 그것을 전혀 찾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관찰결과를 토대로 피아제는 영아가 보이지 않는 물체에 대한 표상을 형성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피아제가 사용한 탐색과제가 대상의 영속성 개념 자체 이외에 다른 처리과정을 요구하는 과제이기 때문에 영아가 탐색활동을 보이지 못한 것으로, 만일 좀 더 단순한 관제를 사용하였더라면 피아제가 예상한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함께 대상의 영속성 개념도 피아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른 생후 3~4개월경에도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외에도 인과관계에 관한 표상은 6개월 정도, 수 개념에 대한 표상도 5개월 이전 영아에게서 나타나고, 더하기와 빼기와 같은 수 조작에 대한 표상도 영아에게 가능하다고 봅니다. 특히 피아제는 감각운동기의 말경인 18개월~2세경에 정신적 표상 또는 상징적 능력이 나타난다고 보았으나, 이때의 표상은 개념적 특성이 결여된 감각운동적인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여러 연구결과는 영아가 가지는 표상이 단순히 감각운동적이라는 피아제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개념적, 논리적 표상능력은 피아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나타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영아도 피아제가 가정한 것보다 더 높은 인지능력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연구결과와 함께 최근에는 영아의 인지능력에 관한 연구가 많이 수행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3. 유아기 표상능력의 발달
일반적으로 유아는 대상에 대해 정신적 표상을 형성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물리적 표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발달합니다. 유아기 표상능력은 전조작기 사고의 특성인 상징적 사고를 나타내는 언어, 그림, 가상놀이를 통해 나타납니다.
1) 언어
Piaget에 따르면,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는 유아기에는 언어라는 상징을 통한 표상능력이 생겨납니다. 언어능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기가 바로 상징적 표상을 사용하는 시기와 일치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의미입니다. 흔히 유아기 언어는 자아중심 어라고 불리는데, Piaget에 따르면 이는 전조작기 사고의 특성인 자아중심성이 언어를 통해 나타난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상징놀이
전조작기 사고의 표상능력 발달로 인한 상징적 사고의 특성 중 하나는 상징놀이입니다. 상징놀이는 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실제 사물에 가상적인 상황을 의도적으로 부가하는 것으로, '마치 ~인 것처럼(as ~ if)' 행동하는 가장적인 행동 또는 비사실적 행동으로 설명되는 놀이입니다. 흔히 가상놀이, 가장놀이로 불리는데, 이는 유아기의 표상능력을 잘 나타내 주는 증거입니다. 보통 상징놀이를 1년 6개월에서 2년 사이에 시작되어 6세 정도까지 지속됩니다. 상징놀이는 모든 문화권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특별히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특성을 보이고 있어, 생물학적으로 진화된 활동 중 하나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보통 상징놀이는 1년 6개월에서 2년 사이에 시작되어 6세 정도까지 지속됩니다. 유아가 상징할 수 있는 대상은 대상의 정체성이나 속성에 따라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 혹은 행동이나 상황 등 매우 다양한데, 발달에 따라 놀이대상과 유형에 변화를 보여줍니다. 예를 들면, 초기에는 상징물과 유사한 구체적이고 친숙한 대상물로 상징놀이를 하다가 연령이 증가하면서 상징물과의 유사성이 없는 대상물로 놀이를 하거나, 실제 물건이 없이도 행동하게 되는 탈맥락화의 특성을 보여 줍니다. 이와 함께 점차 자기 자신 관련 행동으로부터 타인 관련 행동으로의 전이를 보여 주는데, 이를 탈중심화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또는 간단한 단일 대상물이나 하나의 행동에 대한 가상에서 점차 일련의 가상행동을 조합하여 복합적인 행동의 배열로 장면을 구성하는 연속적 통합을 이루게 됩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탈맥락화, 자기-타인 관련 행동전이를 통한 탈중심화, 연속적 통합 등은 피아제에 의해 상징놀이의 구성요소로 정의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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